올해 F3 마카오 그랑프리는
1983년부터 대회가 F3 종목으로 바뀐 후
30회를 맞이한 특별한 대회였습니다.
당시 초대 우승자가 바로 故 아일톤 세나로
이후 미하엘 슈마허, 데이비드 쿨사드 등이
마카오를 거쳐가 F1 스타로 거듭났습니다.
그 동안 마카오GP 정상에 선 아시아 선수는
사토 타쿠마, 쿠니모토 케이스케 둘 뿐입니다.
안드레 쿠토라는 마카오 선수도 있었지만
포르투갈 출신이었습니다.
그나마 사토도 당시 영국 F3 유학 중이었기에
순수 국내파 중에는 쿠니모토가 유일합니다.
1983년 故 아일톤 세나의 우승/goformula.com
1990년 미하엘 슈마허의 우승/goformula.com
2001년 타쿠마 사토의 우승/Macau Grand Prix Committee
2008년 쿠니모토 케이스케의 우승/Macau Grand Prix Committee
FCJ, F3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유망주 히라카와 료(사진 가운데)/f-challenge.jp
하지만 올해 아시아 선수의 우승을 기대케 한
어린 일본인 드라이버가 있었습니다.
바로 18살의 나이로 일본 F3 챔피언에 오른
히라카와 료.
올해 일본 F3 대부분의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차기 고바야시’로 주목 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사실 이번 마카오 그랑프리 견학의 큰 이유는
뮈케 팀과의 내년 유로시리즈 출전 상의였지만
히라카와의 주행을 직접 보고픈 마음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랑프리 주가 시작된 목요일부터
기대는 무너졌고 유럽 파의 강세가 이어졌습니다.
선전을 기대케 한 히라카와 료의 질주/Macau Grand Prix Committee
그러나, 예선1 피셔맨즈 코너와 결승 14랩 마지막코너 알벤드에서 대형 충돌사고를 일으킨 히라카와/Macau Grand Prix Committee
히라카와는 목요일 첫 연습에서 충돌사고로
머신이 크게 손상돼 첫 예선을 뛰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잘 고쳐도 그 동안 쌓아온 셋업들이 무너져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히라카와가 실력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됐고
이로 인해 레이스 전체를 망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처음 참가한 마카오 대회에서
주위의 많은 기대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의 결과가
고스란히 나타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작년 견학 당시에도
뮈케 팀의 펠릭스 로젠퀴스트 선수가
계속된 사고로 자기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하위권에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목요일 주행 모습/Macau Grand Prix Committee
금요일 주행 모습/Macau Grand Prix Committee
마카오GP는 정말 어렵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지구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레이스는 예상대로 정말 치열했습니다.
흔치 않은 천분의 일초 싸움이
예선에서 두 경우나 나왔습니다.
목요일 예선1, 금요일 예선2 합산결과
다 코스타와 훙카델라의 기록,
로젠퀴스트와 사인츠 주니어의 기록이
각각 천분의 일초 차였습니다.
0.001초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라는
0.25초보다도 훨씬 적은 시간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 그리드가 가려진다니
마카오 그랑프리가 왜 ‘세계 최강자전’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Part.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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